활동자료어린이안전처 신설 국회토론회, 아동안전위원회 이제복 위원장 토론 영상 및 전문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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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안전처 신설에 대한 고언" 

 아동안전위원회는 어린이 안전 법안을 전문으로 입법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로서 오랫동안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회에 어린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회의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어린이 안전 법이 이 모습은 아닐 텐데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어린이 안전 법에 대해서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어린이 안전 법은 모두 다 동의하지만, 그 누구도 최우선 과제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도 아니고 예산 이권과도 큰 관계가 없는 어린이 안전 법은 늘 다른 법안에 후 순위로 밀리고 계류되고 결국 폐기되어온 것입니다. 따라서 어린이 안전 법안을 입법하기 위해서는 그저 동의만 하는 백 명의 국회의원보다, 이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의정 활동을 하는 한 명의 국회의원이 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입법부뿐 만 아니라 행정부에서도 비슷하게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 안전 정책이 나이별로 분야별로 다양한 부처에 나누어져 있는 까닭에 복잡한 현실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부처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정책 간 사각지대로 인해 어린이 안전에 허점이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번 어린이안전처 신설 발의도 정부의 어린이 안전 정책에 대한 컨트롤타워로서 중앙부처 간 어린이 안전 정책을 총괄하여 종합적으로 수행하겠다는 취지라는 점에서 깊이 공감합니다.

 오늘 토론에서 저는 어린이 안전 정책을 총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어린이 안전 정책의 범위를 신체적 안전뿐 만 아니라 정서적 안전까지, 즉 어린이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는 것까지 확대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어린이가 진정으로 안전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에 어린이 안전 정책이라고 지정된 것에서 그 범위를 확장하여 어린이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모든 정책이 어린이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어린이안전처 신설이 어린이 안전 정책의 총괄과 어린이 권리 보장을 위한 안전 정책의 확대 평가라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유사한 목적을 가지고 시도되었던 세 가지 제도를 살펴보고 거기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제도는 아동 정책의 총괄을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립된 ‘아동정책조정위원회’입니다. 아동정책조정위원회는 2004년 아동복지법 제10조에 근거하여 아동의 권리 증진과 건강한 출생 및 성장을 위하여 종합적인 아동정책을 수립하고 관계 부처의 의견을 조정하며 그 정책의 이행을 감독하고 평가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10개 장관, 위원장이 위촉한 15명 이내 민간위원으로 구성되었으나 현재까지 16년 동안 단 5회의 총리 주관 회의가 열렸고, 서면회의를 모두 포함해도 1년에 1회도 채 되지 않는 14회의 회의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는 바로 지난주 금요일에 열린 총리 주관 회의도 포함된 수치입니다. 특히 2005년부터 2014년 사이에는 무려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총리 주관 회의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회의 개최 수뿐 만이 아닙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열린 문재인 정부 첫 총리 주관 회의에서도 아동정책조정위원회의 본 설립 취지인 ‘아동정책에 대한 관계 부처의 의견 조정과 정책 이행 감독 및 평가’는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2차 아동정책기본계획(20-24)’에 대한 약식 논의와 민간위원 위촉, 19년 아동총회 건의 내용 및 조치 현황, 그리고 코로나19 대응 아동정책 방향 보고에 그쳤습니다. 이러한 실태에 대해 2011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는 대한민국의 아동 관련 법과 정책은 연령과 이슈에 따라 분절되어 정책 조정기능 강화가 절실히 요구되기에 아동정책조정위원회의 역할을 복구하고 강화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사실상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진단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동정책조정위원회가 왜 목적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는지 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3가지 원인을 꼽는데 첫째는 상근 실무자의 부재입니다. 아동정책조정위원회의 실무를 위해 산하에 아동정책실무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이 또한 1년에 한두 번 각 부처 공무원이 1명씩 모여서 회의할 뿐 업무를 지속하고 발전시킬 상근 실무자가 없습니다. 

 둘째는 정기 회의의 부재입니다. 아동 안전 이슈는 상시적으로 발생합니다. 이에 발 빠르게 대처하거나, 후속 조치라도 하기 위해서는 최소 연 2회 이상의 정기 회의뿐만 아니라 각 정부 부처의 요청이 있을 시 언제든지 임시 회의를 개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16년 동안 5회 열린 회의로는 개괄 논의에서 더 나아가는데 무리가 있습니다.

 셋째는 권고 이상의 영향력 부재입니다. 아동정책조정위원회의 설립 취지는 아동복지법에 근거하고 있지만 위원회와 그 위원의 역할과 권한은 구체적인 명시가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각 부처가 이행할 것인가는 미지수인 것입니다.   

 두 번째 제도는 아동 권리 보장을 위해 국가의 정책이 아동에게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보건복지부의 ‘아동정책영향평가’입니다. 이는 2019년에 아동복지법 제11조의 2에 근거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아동 관련 정책이 아동복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정책의 수립, 시행에 반영하기 위해 도입되었습니다. 아동정책영향평가의 대상은 아동의 권리(건강, 안전, 발달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정책으로 그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영향 평가의 핵심은 아동권리보장원이 수행하는 전문평가인데 2019년도에는 앞으로 어떻게 영향 평가를 진행할지 기본적인 틀을 만드는 연구를 민간 기관에 위탁 수행했고, 올해는 지금까지 1건의 전문평가가 진행 중이나 그 정책이 무엇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직은 시행 초기라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영향 평가 대상이 중앙행정기관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 혹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요청하는 정책으로 한정된다는 점에서 제도의 효과가 대폭 축소될 수 있다 점이 우려가 됩니다. 오히려 반대로 영향 평가를 기본으로 하고 예외 정책을 제외하는 방식이 설립 취지를 살리는데 부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영향 평가 과정의 투명성 보장과 결과의 법적 구속력 보강이 제도의 성공을 위해 갖춰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제도는 올해 5월 26일 제정된 사실상 행정안전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어린이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입니다. 행정안전부가 5년마다 어린이안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수반하는 관계 부처별 주요 추진과제와 추진방법을 계획하면, 관계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종합계획에 따라 매년 어린이안전 시행계획을 수립 및 시행하고 그 결과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제출하는 제도입니다. 

 이 법은 앞서 살펴본 두 제도가 미비했던 실효성 부족을 개선하기 위해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중앙행정기관의 장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제출받은 시행계획에 대해 보완을 요청할 수 있고, 이에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보완하여 제출하도록 체계가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다만 안전 관리의 범위가 정서적 안전을 포함한 아동 권리 전반이 아니라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험으로 국한된다는 점, 그리고 다소 중앙집권적이고 하향식 구조 때문에 오히려 개별 부처의 소극적 태도를 유발할 요인이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추가 논의와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 제도의 설립 취지와 현황, 그리고 보완할 점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어린이안전처 신설에 대해서는 무엇에 집중해서 논의해야 할까요? 분명 앞선 세 가지 제도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어린이안전처 신설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있다는 것은 기존 제도가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해 줄 것이라는 신뢰가 부족한 탓일 겁니다.

 과연 국민들은 왜 정부의 어린이 안전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다시 오늘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복잡한 현실 세계에서 어린이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보통 매뉴얼에 의해 이 사고가 어느 부처 소관인지부터 확인합니다. 애매모호한 사고일 경우 여러 부처가 연관돼 있으나 어느 한 부처도 “이건 내 일이야”라고 책임지고 대응하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 피해 당사자인 국민에게는 온 정부 부처의 미온적 대응보다 한 부처 혹은 기관이 책임감 있게 대응하는 것이 훨씬 더 큰 힘이 되고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어린이안전처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어떤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최우선으로 그 일을 책임지고 담당해 줄 기관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정부 각 부처가 어린이 안전에 대해 명확히 업무 분장을 하고, 책임감 있게 대응하고, 사각지대를 만들 바에야 중복 업무를 감수하는 적극적인 태도로 어린이 안전 정책을 운영했다면 어쩌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어린이 안전 강국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제 이것도 옛말이 되어서 한 아이를 온전히 키우기 위해서는 온 국가가 함께 해야만 합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조에는 ‘아동 최상의 이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아동과 관련된 모든 활동 또는 결정에 있어 아동 최상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의 관행보다도, 행정의 효율보다도 아동 안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고 제도를 만들고 운영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어린이가 안전한 나라로 거듭나기 위한 길이 어린이안전처 신설일지 아니면 기존 제도의 보강일지는 아직 아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동 최상의 이익을 추구하며 현 정책을 운영하고, 새로운 정책에 대한 논의를 이어 나간다면 분명 최선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그러한 역할을 당부드리며 이것으로 저의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